'미지의 서울' 11화, 내 안의 문을 두드리다
50년 가까이 살아온 제 삶에도 이토록 많은 사연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어제 본 드라마 '미지의 서울' 11화는 제 눈물을 멈출 수 없게 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가족, 그리고 사랑. 이 보편적인 이야기들이 어찌나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공감을 이끌어내던지요.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 한편을 어루만져주듯이, 드라마는 담담하게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문 안에 갇혀 사는가
드라마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문 안에 갇혀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임에도, 어떤 이유로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릴 수 있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동시에 고립감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요. 그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 정답인지, 아니면 그 안에 머무는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는 용기는 분명 필요해 보였습니다. 곁에서 사랑으로 자신을 바라봐 주고, 또 사랑으로 지켜야 할 사람들에게까지 마음의 문을 닫아 괴롭히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작은 용기 말입니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은 바로 그런 용기를 내라고 제게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삶은 결국 닮아가는 것인가
드라마 속 미지 할머니의 섬망 증세는 제 아버지의 모습을 강렬하게 떠올리게 했습니다. 개인사를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 삶에도 분명 아픔이 있었고, 저는 그 아픔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습니다. 제 부모님보다는 자식들이 먼저였던 저였기에, 아버지의 슬픔에 대해서는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자꾸만 떠오르는 아버지의 모습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섬망 증세 속에서도 어떻게든 우리 자식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려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저 역시 자식이 먼저였던 아버지의 그 마음을 뒤늦게나마 헤아리게 했습니다. 그때 한 번이라도 더 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리고,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뵐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애증의 관계 속에서 아버지를 짐처럼 여겼던 못난 아들의 모습이 저를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인간의 삶이 이토록 개연성 높고 진실한 이야기로 만들어져 우리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인생이라는 하나의 작은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더욱이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사람에게 먼저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그 곁을 지켜줄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번을 져도 함께, '같은 편'이 되어주는 삶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기꺼이 같은 편이 되어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누가 내 곁에서 변함없이 함께 해주고 있을까요? 사랑하는 아내, 자식들, 부모님… 우리는 편하다는 이유로 때로는 말을 함부로 하고, 오히려 그들로부터 거리를 두려 하는 것은 아닐까요?
부모는 그렇게 자라면서 거리를 두려는 자식들에게 기꺼이 져주고, 심지어 멀어져 주는 것마저 감내하며 자식의 편이 되어줍니다. 아들을 양보하고 홀로 남겨진 드라마 속 엄마처럼 말입니다. 인생은 그런 것이라 알려주듯이 그렇게 멀어져 주는 것일까요? 저도 언젠가는 제 자식과 떨어져 살게 될 텐데, 그때 제 마음은 어떨까요? 30년 가까이 함께 살다가 결혼해서 떠나간 누나의 빈자리에 마음이 텅 비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자신의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품에 두다가, 인생의 뒤안길에서 거리를 두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지만, 그렇다면 인생은 참 서글픈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늘 져주는 연습과 그 연속이 바로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지는 사랑,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더 값지게 얻는 '이기는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우리 곁의 '같은 편'에게 닫혀진 문을 지금 바로 열어야 할 때가 아닐까요?